남자는 4주에 한 번 헤어샵에 간다.
남자는 곱슬머리를 가졌다. 남자의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다가 어느 임계점에 다다르면 머리가 복실해지기 시작한다.
복실복실한 그의 긴 머리는 지저분한 인상을 준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남자는 그것이 여간 싫기 때문에 반드시 4주에 한 번은 헤어샵에 가고만다.
남자가 헤어 디자이너를 정해놓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담 헤어 디자이너가 주는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남자가 그간 일정한 헤어디자이너를 고르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남자에게 있어 머리 자르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태생적으로 외모를 꾸미는 일에 힘을 쏟지 못했다.
힘을 쏟아도 무엇이 될 외모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의 어릴 적 곱슬머리는 유난히도 강하여 왁스와 젤로 코팅하지 않는 이상 뭐가 되질 않는 머리였다.
이런 연유로 머리 자르는 일은 그의 일상 중 시간이 제일 남아돌 때, 숙제하듯 해치우곤 했다.
가령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난 후.
헤어지며 손을 흔드는 그 곳에서 가장 가까운 헤어샵에 찾아 들어가 머리를 자르고 집에 돌아가곤 했다.
강남역에 가본 헤어샵만 7개가 넘을 정도였다.
남자가 하나의 헤어샵을 정해서 다니기 시작하게 된 것엔 유목 생활의 몇 가지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의 두상은 조금 특이했는데, 앙리의 그것과도 닮았고 오이와도 닮았다. 프랑켄슈타인의 이마도 닮았다. 서장훈과도 닮았다.
남자의 옆머리를 짧게 자르고 윗머리를 자르지 않는다면 그의 세로로 긴 두상이 더욱 부각된다.
남자는 그것이 매우 싫었기 때문에 항상 옆머리를 지나치게 자르지 말기를 주문했다.
문제는 각 헤어디자이너마다 해석하는 정도가 다른것인지, 헤어디자이너 각자가 다른 결과물로 머리를 잘라 놓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2010년 즈음부터 디폴트가 되어버린 투블럭의 영향으로.
헤어디자이너들의 옆머리를 짧게 치고 윗머리를 남겨두는 경향은 당연한 일이었다.
남자는 유행에 홀로 저항해야 했다.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남자였지만, 가끔 옆머리를 짧게 자르기 좋아하는 헤어디자이너를 만나면
그의 주문과는 무관한 헤어디자이너의 '쿠세'의 결과물을 받아내야 했다.
프랑켄 슈타인의 꼴을 한 자신을 거울로 마주할 때면 욕지거리를 내뱉곤 했다.
남자가 최근에 정한 전담 헤어 디자이너는 남자이고 그와 마찬가지로 결혼을 한 지 얼마 안 된 같은 또래의 남자다.
그는 다행히 몇가지 적절한 정도의 말을 걸어 준다. 딱 남자가 어색해하지도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그가 하는 말은 주로 서비스업의 특성상 휴일 없이 일하는 것에 대한 한탄이다.
남자는 그저 멋쩍은 웃음과 그런가요의 반복으로 대답했지만, 헤어디자이너의 유함과 착함이 느껴져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
머리를 다 깎으면 인턴의 안내에 따라 샴푸실로 간다.
그리고 호사스러운 샴푸의 시간이 온다.
머리를 젖히고 앉아 샴푸를 받는 순간은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이상하게 샴푸를 받을 때면 눈이 감기고 1초 단위로 잠이 든다. 몽롱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뒷머리를 헹궈줄 때마다 배려하는 착한 마음으로 고개를 버텨주며 속으로 뿌듯해하기도 한다.
언젠가 돈을 만수르만큼 벌게 된다면 꼭 샴푸 하인을 두리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
서비스를 받는 것은 너무 어색하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잘해주는지, 황송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쿨한척 익숙한 척 잘도 하는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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